
미국과 중국의 힘겨루기가 심화되면서, 유럽이 그 여파를 직접적으로 체감하고 있습니다.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EU 27개국 정상회의에서도 이러한 불안감이 여실히 드러났습니다. 공식 의제는 아니었지만, 중국의 희토류 수출 통제 확대가 ‘경쟁력’ 논의의 중심 주제로 부상했습니다.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중국의 조치가 미국을 겨냥했더라도 EU가 대응하지 않을 수 없다”는 입장을 내비쳤습니다. 실제로 EU는 희토류·배터리 원자재·반도체 소재 등 다수의 핵심 산업 자원을 중국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공급망이 흔들릴 경우 산업 기반 전체에 타격이 불가피합니다.
넥스페리아 사태, 미·중 기술 패권의 현장에 선 유럽
이번 미·중 갈등이 단순 외교 갈등을 넘어 ‘산업 통제’ 영역으로 전이된 대표적 사례가 네덜란드의 넥스페리아 사태입니다. 네덜란드 정부는 지난달 ‘상품 가용성 법’을 근거로, 중국 윙테크가 보유한 넥스페리아의 지배권을 강제로 박탈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기업 거버넌스 문제를 이유로 내세웠지만, 미국의 강력한 외교 압박이 배경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됩니다. 트럼프 행정부가 넥스페리아의 중국인 CEO 교체를 요구한 직후 이 조치가 시행되면서, 네덜란드가 미 행정부의 반중 전략에 간접적으로 동조한 셈이 됐다는 평가입니다.
중국은 즉각 강력히 반발했습니다. 특히 중국 내 넥스페리아 공장에서 생산된 반도체 제품의 수출을 전면 금지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유럽의 주요 자동차 산업이 직격탄을 맞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폭스바겐, BMW, 메르세데스-벤츠 등은 모두 넥스페리아로부터 칩을 공급받고 있으며, 생산 차질에 대한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습니다.
EU의 외교적 해법 모색 – 대화와 전략의 경계
EU는 현 상황을 무역 마찰이 아닌 구조적 리스크로 인식하고, 중국과의 직접 대화를 추진 중입니다. 마로시 셰프초비치 EU 무역·경제안보 담당 집행위원은 왕원타오 중국 상무부장과 화상통화를 진행하며 ‘긴급 해결책’을 모색했습니다. 그는 “무역 긴장을 원하지 않지만, 신속히 해결하지 않으면 양자 관계에 악영향이 불가피하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EU 내부 기류는 단일하지 않습니다.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은 ‘통상위협대응조치(ACI)’ 발동을 포함한 강경 대응을 주장하며 “중국의 희토류 통제를 좌시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반면 독일의 메르츠 총리는 “긴장 완화와 실질적 타협이 필요하다”며 신중론을 내세웠습니다.
ACI는 제3국의 통상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마련된 법적 조치로, 서비스·투자·공공조달·금융시장 접근을 제한할 수 있는 강력한 수단입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단 한 번도 발동된 적이 없으며, 사용 시 중국의 보복이 불가피하다는 점에서 부담이 큽니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 유럽의 자율성 시험대
유럽은 지금 ‘전략적 자율성(strategic autonomy)’의 시험대에 올랐습니다. 미국과 안보·기술 협력을 강화하면서도, 중국과의 경제 의존 관계를 무시할 수 없는 복잡한 현실에 직면해 있습니다.
특히 반도체, 배터리, 희토류 등 핵심 산업이 동시에 미·중 간 경쟁의 직접적 타깃이 되면서, EU는 언제든 압박의 전선 한가운데로 몰릴 수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유럽이 선택할 방향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미국과 보조를 맞춰 ‘서방 기술 블록’ 내 결속을 강화하는 길,
다른 하나는 중국과의 전략적 대화를 유지하며 공급망 안정을 우선하는 길입니다.
이 과정에서 얼마나 독자적 판단과 실행력을 확보하느냐가, 앞으로 유럽이 ‘고래 싸움의 새우’로 남을지, 아니면 새로운 질서의 균형추가 될지를 결정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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